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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비어 있는 풀밭
심명여(극 중 주인공 목해원의 이모 역 문정희 님)
해천읍 물결 위로
진눈깨비가 떨어져 내렸다
지난밤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은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졌다
와이는 풀 밖에 남기고 온 그를 생각했다
얼마나 더 고통의 변방을 방황해야
그 기억을 깨끗이 죽여 없앨 수 있을까
사랑했던 기억 또한 진눈깨비라면
계절을 잘못 찾아온 길 잃은 눈사람이라면
뉘우치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사라지기를
쓸쓸한 풀밭엔 환멸이 남았다
지나간 사랑은 망각 그 너머로 가는 것
나 또한 이 허무의 들판을 건너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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