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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재테크

나이키 브랜드스토리

by 유튭 2020. 8. 19.

나이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나이키의 브랜드 스토리인 나이키의 탄생, 성장, 논란 등 나이키에 대한 것을 유튜브 세상의모든지식 채널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957년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오리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코치 빌 바우어만을 만납니다. 이 두 사람은 운동화에 대한 공통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은 독일이었습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1864년 1월 25일 각각 500달러를 투자해 회사를 세우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키의 전신이었던 블루 리본 스포츠였습니다. 

 

 

이들은 일본에 있던 오니츠카 타이거 지금의 아식스로부터 신발 200켤레를 수입해 팔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사업을 진행해 매출이 점점 증가했고 1969년에는 3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블루 리본 스포츠에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와 블루 리본 스포츠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다가 1971년 오니츠카 타이거 측에서 신발 공급을 하지 않습니다. 창업주였던 필 나이트는 자체적으로 신발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시기에 회사의 이름도 바꾸게 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지금의 '나이키', '나이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영어식 발음입니다. 

 

 

필 나이트는 나이키의 로고 디자인을 위해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을 만나게 됩니다. 필 나이트는 단순하면서도 동적인 느낌이 잘 전달되면서 아디다스와는 차별성 있는 로고를 원했습니다. 

 

 

의뢰를 받은 캐롤린 데이비슨은 육상 트랙의 코너를 생각하더니 지금의 스우시(Swoosh) 로고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필 나이트가 완성된 로고를 보더니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말을 하지만 결국 35달러를 지불하고 사용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블루 리본 스포츠는 나이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후 나이키가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가 되면서 필 나이트는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했는데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공동 창업주 빌 바우어만이 와플 굽는 기계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무 스파이크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운동화 밑창에 미끄럼을 방지하는데 탁월했는데 가벼우면서 마찰력이 강해 운동화의 기능을 상당히 높였습니다. 

 

 

빌 바우어만은 와플 기계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에 이 기술을 와플솔(Waffle Sole)(Waffle Sole)이라고 불렀습니다. 1972년 와플솔 기술로 신발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나이키 최초의 운동화 코르테즈입니다. 

 

 

 

 

빌 바우어만은 코르테즈를 스폰할 선수를 찾았고 자신의 제자이자 장거리 육상 7 종목에서 미국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스티브 프리폰테인에게 후원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로써 나이키 최초의 스타마케팅이 시작됩니다. 이후 육상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을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는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신기록을 세우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면서 아주 큰 홍보 효과를 보게 됩니다. 

 

 

1979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의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공기를 주입하더니 외부 압력에도 원상태로 돌아가는 기술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이키의 핵심 기술인 에어 쿠셔닝 기술입니다. 

 

 

에어쿠셔닝과 와플솔로 운동화를 제작했고 나이키 최초의 마라톤화 테일윈드가 탄생하게 됩니다. 1970년대 미국에 조깅 열풍이 불었는데 나이키는 조깅 열풍에 맞춰 운동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대중의 호응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1982년에는 에어 쿠셔닝 기술이 들어간 농구화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에어 포스 원입니다. 에어 포스 원은 기능성으로 시작했지만 패션계의 운동화로 자리 잡으면서 아주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입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는 에어로빅 열풍이 불게 됩니다. 이때 나이키는 에어로빅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가벼운 피트니스화를 출시한 리복에게 선두 자리를 뺏기게 됩니다. 

 

 

이에 나이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신인 농구 선수와 후원 계약을 하게 되는데 그 선수가 바로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었습니다. 1985년에는 마이클 조던을 위해 신발을 개발하는데 그 신발은 바로 에어 조던 원입니다. 마이클 조던은 에어 조던 원을 신고 화려한 플레이를 했고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은 에어 조던 원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이키의 매출은 계속 상승하게 됩니다. 

 

 

이후 나이키 산하의 독립 브랜드로 떨어져 나왔는데 꾸준히 에어 조던 시리즈가 발매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과의 협업으로 에어 조던 시리즈가 대박 난 뒤 계속해서 각 분야 스포츠 선수들과 협업을 했는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많은 스타들의 라인을 론칭했습니다. 

 

 

 

 

1988년 필 나이트가 나이키를 좀 더 알리기 위해 위든 앤드 케네디라는 광고회사에 광고를 의뢰하게 되는데 광고회사 대표였던 위든이 나이키 광고를 고민하던 중 어떤 살인자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게리 길모어라는 살인자가 있었는데 1976년 시민 2명을 이유 없이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사형을 10년 동안 집행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사형당하게 되는데 사형 집행 의자에 앉은 길모어는 "Let's do it"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이 사형 집행은 미국 사회 전역에 알려지게 되고 길모어의 마지막 말 또한 유명해집니다. 

 

 

위든은 이 유명한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대로 쓰기는 찝찝해 단어 하나를 바꾸는데 그것이 바로 'Just do it'입니다. 이 말은 나이와 성별, 건강 상태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육체적, 정신적 동기를 불어 일으키기에 충분했는데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이키의 핵심 가치가 됩니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며 여러 시리즈를 발매한 에어 조던이었는데 에어 조던 12가 출시된 뒤 국내에서 큰 논란을 얻게 됩니다. 1996년에 특유의 햇살 무늬 디자인으로 발매되는데 욱일승천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나와 국내 소비자들은 불편해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009년 신발 밑창에 욱일승천기 디자인을 넣은 '라이징 선'을 출시했고 국내 소비자들은 나이키 불매 운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심각성을 깨달은 나이키는 국내에서 해당 디자인을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2018년에는 광고 모델로 등장한 인물이 구설수에 올랐는데 미국 사회의 논란이 되었던 전직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이었습니다. 콜린 캐퍼닉은 2016년 8월 경기에서 미국의 국가가 나올 때 일어서길 거부하고 무릎을 꿇었는데 이것은 흑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를 표시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선수들 간의 무릎 꿇기 저항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격분합니다. 이러한 보이콧 논란이 계속되면서 나이키 주가는 잠시 하락했던 적도 있지만 다시 회복한 상태입니다. 나이키 브랜드 스토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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